1. 조직에 순응하더라도 자기 일에서는 야성적이어야 한다. 야성적 기질을 잃으면 자기 창조력이 없고, 결정적일 때 카리스마 부족으로 기회를 잡지 못한다.
2. 누구나 야성적 사냥꾼의 유전자가 대물림되고 있음을 인지하여, 자기를 계발하고 억센 기질을 되찾아 도전해야 한다. 행복은 자기만족에도 있지만, 자기 성취감에도 있다.
3. 열망과 야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열망과 야성은 서로 교감한다.
열망은 자기를 신비하게 만들고, 야성은 신비함을 행복으로 완성한다.
4. 야성을 배우려면 홀로 피는 들꽃을 보라. 들꽃은 약육강식의 야성과 생존 법칙을 알려주면서 어떻게 살아남는 지를 깨우쳐 준다.
5. 열정과 도전은 사납고, 까다롭고, 기계적인 육체에 영혼의 불꽃을 타게 한다. 영혼의 불꽃을 태워야 행복도 있다.
순응적 삶이냐? 야성적 삶이냐?’
순응과 야성은 개별적 취향이며 개별적 선택이다.
순응적 삶은 정도와 질서 속에서 평화를 추구한다면, 야성적 삶은 준비와 노력으로 개척과 진보를 추구한다.
만주 대륙에서 말을 타며 사냥하던 우리 조상들의 뜨거운 피와 강한 기질을 전수받은 우리들은 신바람이 불면 불가능한 일도 기적으로 만든다.
한강의 기적, 월드컵 축구 4강 진출, 올림픽에서 야구 제패는 우리 에게 아직도 야성이 남아 있음을 말한다.
그 야성적 기질로 자기를 창조하고 자아를 확대시켜야 한다.
착하고 순응적 기질이라면 조직 속에서 성실하게 꿈의 계단을 밟아야 하지만, 야성적 기질이라면 조직에 묶이지 말고 야망의 초원으로 달려가 나만의 사명과 임무를 찾아야 한다.
순응적 행복과 야성적 행복.
순응과 야성은 무엇이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자기 기질과 여건에 가장 어울리는 방책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다. 지금 세상은 마우스 속도만큼 빠르게 변한다.
현재 속도로 변한다면 미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된다.
계획 자체가 무의미한 세상,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혼돈의 세상, 예측이 불가능한 불확실한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오만과 불평보다는 순응과 단계적 삶이 낫지만, 이왕 사는 삶 야성적 기질을 찾아야 한다. 눈을 크게 떠서 세상을 살피고, 생존 관련 기술을 직접 익히고, 힘의 갑보다 감성의 갑이 되어 상대에게 기쁨을 주고, 야성과 도전 정신으로 작은 공간의 묶임을 풀고, 입체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