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중에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집값이 뛴다”는 엉터리 주장이 나돌고 있다.
물가가 급등하면 실물자산 가격은 물가가 급등하는 만큼 올라가는 대신 화폐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니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집을 사라는 것이다.
물가가 과도하게 상승하면 각국 정부는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적정 수준을 넘는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방치하면 소비와 투자 위축을 유발하여 경제적 부작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아무리 현재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고 싶더라도 물가 안정이 주요 역할인 한국은행이 인위적으로 장기간 낮춰놓은 기준금리를 조금씩이라도 인상해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면 집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처럼 가계부채가 과도하고 이처럼 사상 최저금리 수준에서도 주택대출을 빌린 가계의 약 79% 가량이 이자만 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집값이 약세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집값이 뛸 것처럼 선동하는 것은 현실경제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무시한 채 일반 가계의 투기심리를 선동하기 위한 낭설일 뿐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부동산 값이 뛴다’는 주장은 과거의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설득력이 없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최근까지의 경제상황을 감안할 경우, 향후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본격적인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견인형(demand-pull)이라고 보기 어렵다.
실물경제가 여전히 침체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제로금리와 과도한 유동성 공급, 그리고 막대한 재정적자로 인한 화폐적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발생 원인은 다르지만 형태적으로는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 양상과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당시 주택가격의 변화를 살펴보면 향후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주택가격이 어떻게 변화할지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1986년 이전의 주택가격 추이를 체계적으로 조사한 통계는 없다. 따라서 당시 인플레이션에 따른 집값 추이가 어떤지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과거 사례를 통해 충분히 짐작해볼 수는 있다.
먼저 아래 <도표1>을 참고로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1970년대 미국경제는 1,2차 석유파동으로 급격한 원가견인형(cost-push)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1차 석유파동 때인 1974년 11%까지 상승했고, 2차 석유파동의 정점이던 1980년에는 13.5%까지 상승했다.
반면, 1968년부터 미국의 집값은 금리하락을 배경으로 1972년 무렵까지 물가상승률을 소폭 상회하는 수준으로 올랐다.
하지만 1973년부터 물가가 6.2%까지 뛰자 FRB의 기준금리(FF금리)가 8.7%까지 오르게 된다.
이 때문에 1973년부터 미국 집값 상승률은 물가상승률 수준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이는 1차 석유파동의 정점인 1974년에도 이어져 FF금리는 10.5%까지 뛰어 상대적으로 집값을 끌어내리게 된다.
1975년 이후 물가가 차츰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FF금리도 급격히 떨어져 1977년까지 5%대 수준이 유지됐다.
이 같은 저금리를 배경으로 미국 집값은 1976년부터 투기버블이 발생해 1979년에 정점을 찍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시장금리와 규제금리간의 괴리가 부동산 투기버블을 야기한 또 다른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30년대 대공황에 대한 교훈으로 미국은 은행들간에 금리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FRB의 ‘Regulation Q’라는 예금금리 상한선 규제 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1970년대에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서 예금은행의 예금금리와 시장금리간에는 커다란 괴리가 발생했다. 이처럼 시장금리와 규제금리 간의 차이를 이용하여 부동산투기가 급증했던 것이다.
당시 주택대출을 주로 담당하는 금융기관 중에 주택대부조합(S&L)이 있었다. 이 주택대부조합은 시장금리로 단기 자금을 조달하여 장기 고정금리(규제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으로 시장금리가 급등하자 사람들은 비싼 시장금리보다는 저축대부조합의 낮은 대출금리로 주택자금을 차입했다.
상대적으로 싼 규제금리로 차입하여 집을 지어 시장금리가 반영된 가격으로 팔게 되면 시세차익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저축대부조합이었다.
비싼 시장금리로 자금을 조달하여 규제에 묶여 싼 대출금리로 대출을 해주다 보니 역마진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에 걸쳐 이른바 저축대부조합이 1,000개 이상 파산하고 1,000억 달러가 넘는 공적 구제금융이 투입되는 일대 소동이 일어나게 된다.
1979년까지 가파르게 오르던 미국 집값은 2차 석유파동으로 인플레이션이 극에 이르고 저축대부조합 대량 파산 사태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1980년에는 집값 상승률이 확 꺾이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가격으로는 1979년부터 집값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1984년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즉 1,2차 석유파동 당시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집값은 오르기는커녕 상대적으로는 오히려 빠진 것이다.
이로부터 집값에는 금리상승이 극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1976년 이후 집값은 1차 석유파동이 끝난 뒤 지속된 상대적 저금리와 시장금리와 규제금리간의 괴리를 이용한 투기를 바탕으로 부동산 버블이 발생했다.
부동산 투기버블은 물가상승을 가속화시켰다. 그러자 FRB는 1978년부터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따라서 올렸다. 1981년에는 물가상승률을 무려 6% 포인트 상회할 정도로 FF금리가 급격히 올랐다.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자 정책금리가 따라서 급등하고 그로 인해 부동산투기와 물가상승이 집값 거품을 꺼뜨리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처럼 물가가 급속히 오르게 되면 정책금리 인상은 거의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1970년대 이후 미국 집값 추이를 봐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저금리일 때 집값이 상승하고 고금리일 때는 집값이 가라앉는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미국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도 앨런 그린스펀 재임 시절의 FRB가 유례없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한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00년대 국내 주택가격이 외환위기 이후 정착된 저금리 기조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집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금리상승으로 인해 떨어지는 것을 보다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아래 <도표2>를 보면 1970년 이후 일본의 부동산 버블은 1970년대 초반과 1980년대 후반 두 차례 발생했다.
1972년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일본열도 개조론을 주창하면서 1973년까지 급격히 상승한 일본의 전국 땅값은 1차 석유파동이 발생한 1974년부터 대폭 하락했다. 1차 석유파동의 정점인 1974년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23.2%에 이를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다.
즉, 인플레이션 때문에 집값이 오른 것이 아니라 집값이 오히려 떨어진 것이다. 집값이 떨어진 이유는 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고금리로 1974년 이후 물가가 급속히 안정됨에 따라 금리도 낮아지기 시작하였고 그로 인해
집값 하락도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1979년 말의 2차 석유파동 때에도 물가가 상승하자 금리가 치솟았다. 그로 인해 집값 회복세도 1980년까지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후 물가가 매우 낮은 수준에서 안정되자 금리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4%대까지 떨어지는 저금리 상황이 발생했다.
이처럼 저금리와 더불어 저유가를 배경으로 유명한 일본의 부동산 투기버블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19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 후에는 일본은행의 제로금리 기조에 따라 시중금리가 훨씬 더 낮아졌지만 이미 부동산 버블의 충격과 구조개혁 지연으로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은 이미 모두 주지하는 바와 같다.
마지막으로, 아래 <도표3>에서 한국의 물가 및 아파트가격 추이를 통해 상관관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한국의 경우 1986년 이전의 주택가격 데이터의 부족으로 1,2차 석유파동 당시 고물가 상황에서 주택가격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1986년 이후의 물가와 주택가격 변동률을 살펴보면 물가와 주택 가격 추이의 상관관계를 유추해볼 수는 있다.
우선, 연도별 물가상승률을 보면 석유 1,2차 파동 당시 물가는 연간25~30%수준까지 치솟아 미국이나 일본보다 더욱 심각한 고물가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1,2차 석유파동의 중간 시기인 1970년대 중후반에 한국에서는 강남 개발 등과 맞물려 부동산
투기로 인한 건설 파동이 일어난다.
국민은행 주택가격 지수가 작성되기 시작한 1986년 이후 당시 이른바 저금리, 저유가, 저환율의 3저 현상으로 부동산투기가 발생해 아파트가격이 폭등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당시 노태우정부는 일산과 분당 등 5개 신도시를 중심으로 200만호 주택건설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부동산투기 버블과 그로 인한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고 주택공급이 급증하면서 1991년부터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정점을 찍고 가파르게 하락했다.
이처럼 아파트가격 하락 내지는 정체 상황은 금리가 물가상승률을 훨씬 상회했던 199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8년에 환율 폭등으로 물가가 급등하고 경기가 급속히 악화되는 상황에서 금리가 폭등함에 따라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 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금리가 급격히 하락하여 저금리 기조가 정착되면서 2001년부터 부동산투기 버블이 본격화된 것이다.
물론 부동산가격이 때와 상황을 불문하고 전적으로 금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최근 미국의 경우 경제위기로 제로금리 정책을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공급과잉과 가격급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주택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 초반 일본의 열도개조론이나 1990년대 한국의 200만호 주택건설사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부의 주택정책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위의 미국과 일본, 한국의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분명한 것은 금리가 부동산가격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이 오면 집값이 오른다’는 주장은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으로 보나 논리적으로 보나 사실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굳이 단순화해서 표현하자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금리가 상승하기 때문에 집값은 떨어진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이다.
미국이나 일본이든 세계 각국에서 과도한 부동산 버블은 꺼지게 돼 있으며,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는 물가 수준으로 수렴한다.
이는 또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S&P케이스-실러 지수 창안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실러 교수가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