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인적인 일때문에 성공한 디벨로퍼(아파트 등 주거시설의 시행사) 들을 집중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만나다 보니 성공한 사람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확신을 거듭 가지게 됩니다.
이들의 성공 스토리는 재테크에도 도움이 될 것같습니다.기회가 되는대로 이들의 이야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즐겁게 한 것이 디벨로퍼 성공 계기
미래C&C는 대우건설 특수주택팀 팀원들이 독립해서 만든 회사다.핵심 멤버는 우명구 사장,류진렬이사,이월무 이사 등 세사람이다.
이들은 96년말 특수주택팀에 소속돼 있었다.특수주택팀은 아파트를 제외한 다른 주거시설을 개발하는 팀.한마디로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비인기 부서였다.오죽했으면 이팀은 별도의 부서로 독립되지 않고 재개발,재건축팀 산하에 소속돼 있었다.
그러나 여기 멤버들은 이 사업을 하면서 한국에는 아파트 뿐만 아니라 소득수준 연령수준 지역 등에 따라 다양한 주거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물론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지만 모두가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며 다른 상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던 것.
따라서 이런 틈새 상품으로 승부하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비인기 부서이다 보니 소속원들의 결속력도 어느 팀보다 강했다.합을 합쳐서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있었다.
고급주상복합아파트인 트럼프월드 등의 사업을 맡아서 진행했던 이들은 디벨로퍼 시대가 도래했다고 판단,2000년말 독립을 결심한다.먼저 독립한 사람은 우명구 사장과 류진렬이사.
시작은 미약했다.이들은 처음 선배가 다니는 회사의 사무실 한칸을 빌려 일을 시작했다.이후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생기자 2001년 7월 이월무이사가 합류했다.
이들은 변신 계기는 한마디로 나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기 싫다는 것이었다.당시는 대우그룹 사태가 나면서 대우건설이 부도 사태에 몰리고 있는 상황.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내 의지와 관계없이 회사가 위기를 맡는 것을 보면서 자기 일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출신성분에 따른 한계,능력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받는 연봉 등 조직이 가지는 한계점을 느낀 것도 독립의 계기가 됐다.
이들의 주력사업은 ‘강남 고급빌라’ 및 ‘공장부지’ 개발 두가지다.이는 이들이 대우건설에 다닐 때 하던 주특기 상품.
비인기 분야를 맡았다고 해서 일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했다면 그들이 지금처럼 디벨로퍼로 확실하게 자리잡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들 상품은 특수주택사업팀에서 이일을 할 때는 아무런 인기가 없었지만 지금은 틈새 영역으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잡은 상품이다.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한다면 나중에 그 경험은 반드시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이들은 처음부터 역할 분담을 철저히 했다.우명구 사장은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했다.강남고급빌가 사업은 이월무이사가,공장부지 개발은 류진렬이사가 맡았다.
물론 처음부터 일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회사 설립후 처음 7-8개월은 놀았다.시드머니가 부족하다보니 보수적으로 사업을 검토했고 그러다 보니 쉽게 프로젝트를 결정할 수없었다.그래서 평소 친했던 분양대행사 사장의 도움을 받아 2건의 분양대행을 하면서 연명했다.
◆한동네 전체를 통째로 고급빌라 마을로 바꾸다.
강남구 청담동은 초호화판 고급빌라와 노후 단독∙연립주택이 병존하는 동네.대우건설에서 고급빌라 사업을 담당했던 이월무사장은 청담동을 거닐던 중 이동네에서 노후 단독∙연립을 매입해 중가의 실속형 빌라를 지으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된다.
이곳은 연예인이나 부자들이 사는 고급빌라촌으로 소문나 있는 곳.이곳에 새로 들어선 집들은 초호화 외재 자재를 쓴 시가 수십억대 빌라였다.
그러나 이런 동네에 살고 싶어하는 중산층도 상당수 있을 것이라고 이사장은 판단했다.따라서 방4개 욕실 2개 등을 갖춘 70평형대 실속형빌라를 40평형대 아파트가격(5-6억원선)에 공급하면 쉽게 팔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단지화를 시켜 통합 관리하면 빌라의 최대약점인 높은 관리비와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사업을 결심한 그는 2001년말 낡은 주택의 매매계약서를 체결한뒤 친정인 대우건설과 은행을 찾아갔다.
아직 우리나라 개발업의 자금조달구조는 계약금은 디벨로퍼가 내고 중도금과 잔금의 경우 건설사 지급보증하에 은행으로부터 빌리는 구조.
그러나 건설사와 은행은 쉽게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건설사는 먼저 선분양을 해오면 지급보증과 시공을 하겠다고 나왔다.
그래서 그는 평소 알고지내던 돈많은 지인들에게 이 상품을 원가(5억2천만원선)선분양했다.그의 생각에 공감한 지인(내외주건 김신조 사장 등)들은 선뜻 이상품을 분양받았다.
이 지인들은 모두 대우건설에서 일할 때 사귄 사람들이다.자신이 ‘갑’의 입장에 있었지만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열심히 일을 한 것이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에 이들이 선뜻 분양을 받은 계기가 됐다.
그래서 첫 번째 작품을 성공리에 끝냈다.이 작품을 끝내자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주변에 낡은 주택을 가진 사람들이 나도나도 자기집도 개발해달라고 나왔다.
집주인들 입장에서 집이 낧아서 살기에 불편하고 새로 짓자니 건축비가 많이 들고 해서 차라리 디벨로퍼에게 파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
그래서 이 사장은 청담동에 있는 노후주택을 모조리 빌라로 개발했다.이렇게 그가 공급한 것은 멤버스카운티 3∙5∙6∙7∙8∙9∙10∙12차,로열카운티 6차 등이다.
처음에 집을 분양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시세는 두배정도 올랐고 현재 전세가만 6억원에 달한다.
그는 요즘 빌라 사업을 쉬고 있다.무엇보다 전국적인 지가상승에 영향을 받아 강남 소규모 필지 땅값이 많이 올라 소비자들에게 먹힐 수 있는 가격대에 맞출 수가 없다.
또 이런 사업을 할 동네도 마땅치 않다.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동네 즉 청담동 같은 동네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실제 그는 반포동도 이같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시범적으로 한동을 공급해 봤지만 그동은 1년이상 미분양 상태다.
그러나 그는 지방의 핵심지역이나 강북의 부자동네에선 이런 컨셉의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의 고급빌라 사업은 메이저건설업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실제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도 최고가 아파트로 떠오른 삼성동 아이파크 개발 당시 이 사장의 자문을 받았다.
그는 대우건설에 근무할 당시 사상처음으로 분양가 1천만원을 넘긴 엘로즈카운티 로열카운티 1∙2∙3 등을 개발해 본 것이 좋은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다.상품과 자재에 대한 안목을 배운 것이 두고두고 도움이 됐다는 얘기다.
그가 생각하는 고급빌라 사업의 한계는 아직 시공사들이 고급빌라 사업은 별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사업규모나 절대수익금이 작아 대형사들이 시공하기엔 무리라고 보기 때문이다.또 입주자들의 요구가 다양해 자칫하다간 손해를 보기 십상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강남권 고급빌라 사업은 상지건영 등 작은 개발업체들이 주로 하고 있다.
메이저 업체중 고급빌라 시공을 하는 곳은 대우건설 뿐이다.
그러나 대우건설은 처음에는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노하우를 축적해 사업당 10%대 이상의 짭짤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대우건설은 작은 업체들이 하는 틈새영역을 브랜드를 가지고 접근하면 승산이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속전속결로 승부하는 공장부지 개발
류진렬이사는 공장부지 개발의 원조다.
그는 처음으로 공장부지를 주거형오피스텔로 개발했다.류이사의 성공을 본 이들이 너도나도 공장부지 개발에 뛰어들면서 서울에선 한마디로 공장부지 개발 붐이 조성됐다.
그는 속전속결을 원칙으로 한다.부지 매입에서 분양까지 보통 3개월안에 끝낸다.속전속결을 선호하는 것은 시간은 곧 위험(리스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주거정책은 시황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어느날 갑자기 용적률하향조정 분양권전매제한 등의 조치가 나온다.그래서 시간을 끌면 끌 수록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규제 조치를 맞아 거꾸러질 수있다.
또 시장 분위기도 3개월을 넘기면 언제든 바뀔 수있다.한국 분양시장은 정부정책에 따라 수시로 분위기기 변하는 곳.
그는 최초로 공장부지를 주거형오피스텔로 개발했다.
그가 공장부지에 주목한 것은 방치된 땅이다보니 땅값이 샀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공장부지 개발 노하우가 없어 개발업체들이 공장부지를 거들떠 보지않았다.그는 이런 땅을 매입해 싼 값에 공급하면 히트를 칠 수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2001년 11월 양평동 공장부지를 매입했다.이땅은 토지공사가 보유하고 있던 땅.그는 입찰에서 과감하게 내정가(80억원)보다 20억원 높은 가격을 써내 이땅을 낙찰받았다.
그래도 분양가를 주변시세보다 확실히 낮출 수있는데다 부지 옆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는 등 여건이 좋아 확실하게 땅을 잡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나서 3개월안에 분양에 나선다는 목표아래 인허가 마케팅 설계 등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단 동시에 일을 스타트 시킨 뒤 빵구가 나면 하나씩 매꿔가면서 사업을 진행했다.
그이후 그는 신정동에서도 공장부지 한 곳을 더 주거형오피스텔로 개발했다.이 사업역시 부지매입에서 분양까지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사업이 성공한 이후 영등포구 소재 공장부지와 땅값은 급등했고 이 일대에서 공장부지 개발붐이 일었다.
그는 스스로의 사업 스타일이 보수적이라고 평가한다.그래서 조금 남더라도 안깨지는 사업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길로
미래C&C의 멤버들은 지난 2003년말 각자 법인을 차려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서로 사이가 나빠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원래 처음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시드머니가 모이면 각자의 길을 가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했었다.
지금은 어느정도 시드머니가 모인 만큼 서로의 길을 가리로 했다.
원래 같은 땅을 보고도 생각은 다 다른 것이 현실이다.사람마다 사업에 대한 취향과 의사결정 스타일이 다른다.
따라서 각자가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 각자의 법인을 내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연합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각자 사업을 하다 큰 프로젝트가 생기면 공동으로 수행하려는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있다.한마디로 ‘따로 또 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