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가 양도세 면제받은 까닭
지역간 불균형 개발의 결과인 수도권 집중, 핵가족화와 고령화로 인한 도시 가구수 증가 등으로 주택 수요는 공급을 앞질렀지만 주택부족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미흡했다. 민간자본에 크게 기댄 주택시장 구조는 주택을 투기대상으로 보는 심리를 키웠다. 지난 40년간 투기억제와 경기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일관성 없는 정책이 추진되면서 주기적 집값 상승과 ‘부동산 불패’라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줬고, 적절한 대체투자 시장의 미성숙은 자본의 부동산 쏠림 현상을 가속화했다. 불투명한 시장 구조와 세제상의 허점도 많았다. 공시가격과 실제 가격이 크게 달라 진짜 가격을 알기 힘들고, 가격 부풀리기와 이중 계약서로 세금탈루가 관행처럼 이뤄졌다. 편법과 허점투성의 거래 환경은 많은 국민들을 부동산 투기라는 유혹 속으로 끌어들였다. 정부는 지금도 과거 ‘투기시대 패러다임’과 씨름하고 있다. 이는 투기로 병든 우리 부동산 시장을 근본부터 치유하고 정상화하는 힘겨운 과정이다. 국정브리핑이 주택도시연구원·국토연구원·금융연구원과 공동으로 기획한 <실록 부동산정책 40년>은 ‘제1부, 왜 올랐나’에 이어 '제2부, 어떤 정책을 폈고, 왜 못잡았나' 를 통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어떤 우여곡절 끝에 탄생 했으며 역사적 의미와 쟁점은 무엇인지 점검한다. 2부의 첫번째 주제로 <형평성과 투명성 제고 정책>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제2부 어떤 정책 폈고, 왜 못잡았나 <투명성과 형평성 제고 정책> ① 시장 투명화와 실거래가 신고 ② 오락가락 양도세의 교훈 ③ 보유세 제자리 찾기와 종합부동산세 2001년 초 건설업계에서 시작된 양도세 폐지론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해 2월1일 여당인 민주당의 남궁석 정책위의장이 한국주택협회가 주축이 된 건설업계와의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방주 현대산업개발 사장은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투기 억제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2000년 말 현재 주택보급률이 94.8%에 이르는 등 주택이 이미 투기대상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했으므로 양도세는 즉각 폐지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정종득 벽산건설 사장도 “주택 수요 억제를 위한 양도세 부과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로부터 석 달 뒤인 5월5일 ‘부동산 양도소득세 제도가 지난 75년 입법화된 후 26년 만에 전면 개편된다’는 <한국경제신문>의 보도가 나오더니, 5월10일 재정경제부가 “현행 부동산 세제는 투기억제를 목적으로 운용되고 있으나 주택보급률이 94%에 달하는 현 시점에서 부동산 투기 바람이 다시 불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선진국처럼 보유세 위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히기에 이른다. 다음 날,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김만제 정책위의장은 “현행 양도세법은 잦은 개정과 수많은 예외사항 등으로 완전히 누더기가 됐다”며 “주택보유율이 80%를 넘어선 현 시점에선 부동산 투기의 위험도 줄어들었고 주택거래의 활성화를 위해 양도세는 폐지돼야한다”고 말했다. 양도세 비과세의 공방전 그러나 2년 뒤인 2003년5월 예상치 못한 ‘반격’이 일어났다.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가구1주택에 대해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외국처럼 1주택이든 2주택이든 모든 주택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이 조세원칙에 맞다 ”고 밝혔다. 1가구1주택 비과세는 정부 수립 후 금지옥엽처럼 지켜온 금기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경제 정책의 수장이 양도세 폐지론은 커녕 ‘예외 없는 과세’라는 칼을 치켜든 것이다. 언론과 한나라당 대표는 물론이고 여당 정책위 의장까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 사태는 7월21일 민·관 위원으로 구성된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아직은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성격이 강한 만큼 (1가구1주택에 대한) 양도세 부과는 시기상조”라고 의견을 모으면서 사실상 백지화했다.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김진표 부총리는 “1가구1주택 양도세 비과세 폐지는 실거래가 과세제도가 정비되는 시점에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또 다시 언급했고, 11월에는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이 “장기적으로 1가구1주택도 양도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2년 뒤인 2005년3월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2005년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1가구1주택 양도세 비과세제도를 언제 폐지할지 구체적인 일정은 상반기 중에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양도소득세의 탄생과 그 숙명 양도세는 부동산 양도로 실현된 자본이득을 과세대상으로 하는 비정기적, 자발적 조세이지만 부동산경기를 조절하는 정책조세적 성격을 강하게 띠어왔다. 활황기에는 세율인상, 과표인상, 비과세감면축소를, 불황기에는 그 반대 방향으로 경기를 조절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태생부터가 그랬다. 부동산의 양도차익에 대한 세제가 처음 마련된 것은 1967년 11월 제정·공포된 ‘부동산투기억제에 관한 특별조치세법’이다.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도시로의 인구집중 경향이 나타났고, 덩달아 토지 가격이 많이 올랐다. 이에 ‘부동산투기억제세’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난 게 양도세의 출발이었다. 투기억제세는 개인과 법인의 토지양도차익에 대하여 50%의 단일비례세율을 적용했다. 다만 1세대1주택에 부수된 토지로 건물 면적의 10배 내에 이르는 토지는 면세대상으로 했다. ‘부동산투기억제세’가 지금과 같은 양도세의 모양새를 비로소 갖춘 것은 1974년. 종합소득세 제도를 도입하면서 종합소득세와 분리과세하는 양도소득세법을 새로 만들었다. 양도소득세법이 투기억제세를 흡수한 것이다. 특기할만한 건, 과세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건물양도차익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된 반면 물가상승률만큼 취득가액에 더해 공제해 주도록 했다는 점이다. 투기억제든, 건설경기부양이든 양도세가 보다 실질적인 효과를 내려면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지 구체화하려는 시도는 최초의 부동산종합대책이라 할 1978년 8·8조치에서 이뤄졌다. 중동특수에 따른 오일달러가 유입되면서 그 여유자금이 부동산에 몰리면서 이때 처음 아파트가 고급주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76년 12월 1가구1주택 가운데 고급주택을 과세대상으로 전환하는 데 이어 1978년 봄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마다 부동산값이 오르는 현상을 보이자 정부는 8·8조치에 앞서 ‘부동산투기지역 고시제도’를 발표했다. 고시된 투기지역의 토지나 건물에 대한 양도세를 내무부가 고시하는 ‘과세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국세청이 별도로 고시하는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과표를 높여 세금 부담을 늘리겠다는 뜻이다. 양도세의 획기적 전환점이 될 뻔했던 8·8조치 주목해야할 건 8·8조치의 원안에 담겼던 획기적 구상이다. 거래당사자와 거래금액이 기재된 부동산거래용 인감증명제도를 실시하기로 하는 동시에 양도세를 회피하기 위해 극성을 부리던 미등기전매를 막는 수단으로 인감증명의 유효기간을 1주일로 대폭 줄이는 안이 들어있었다. 실거래가를 과표로 삼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동시에 등기 전에 수차례 사고팔면서도 세금 없이 매매차익을 올리는 투기 관행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당시 이 안을 마련했던 강만수 전 재정경제부 차관은 저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이렇게 증언한다. “다른 나라에 유례가 없는 양도소득에 대한 물가상승률 공제는 가격상승에 따른 소득을 공제하여 투기소득 과세의 실효성이 반감됐다. 특히 양도가격을 거래가격이 아니라 정부가 정한 시가표준액을 기초로 과세할 때는 과세를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린 면세 허점을 막는 동시에 실제 거래되는 가격을 근거로 한 과세가 없이는 양도세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초 안은 변질되고 만다. 강 전 차관은 부처간 의견조율의 어려움을 기록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건설부가 소극적이었고 내무부의 반대가 강했다. 투기꾼들과의 전쟁보다 내부 반대자들과의 전쟁이 더 힘들었다. 밤낮 없는 수고가 허탈할 뿐이었다.” 강 전 차관은 “(2005년 8·31 조치로 전격 도입된) 실거래가 등기부 기재 제도는 그때 거래 내역을 기재하는 인감증명제도만 실행했어도 불필요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양도세 강화 외에는 ‘원안 변질’ 결국 인감증명제도는 ‘부동산 거래용’으로만 표시하고 유효기간을 1개월로 하는 것으로 수정됐고, 그밖에 토지거래 허가제는 신고제로, 변호사 등에 의한 토지 매매계약 체결제도는 공인중개사제도로 변질됐다. 그나마 원안이 지켜진 건 양도세 강화뿐이었다. 물가상승률 공제를 폐지하고, 1가구1주택의 면세요건을 6개월 이상 실제 거주로 요건을 강화하는 것으로 발표됐다. 부동산 경기가 활황이면 조이고, 불황이면 풀어주는 양도세의 운명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건 8·8조치를 전후로 한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반 그리고 IMF 외환위기 이후의 두 시기다. 8·8조치 이후 2년간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일반경기까지 불황의 여파가 미치자 완화가 시작된다.
1980년 9월 경제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양도소득세를 최대 20% 인하하고, 물가상승률까지 양도가격에서 공제하는 양도소득특별공제제도를 부활시켰다. 미등기전매의 양도세율도 80%에서 75%로 낮췄다. 석 달 뒤인 12월에는 탄력세율을 적용해 이미 낮춘 양도세를 절반까지 추가로 감면해주는 조처를 취했다. 이 탄력세율은 애초 1981년 9월까지 적용하기로 했으나 잇따른 경기부양책으로 1984년 3월까지 연장됐다. 제도적인 뒷받침 없이 불충분한 국세청 조사인력만으로는 양도소득세를 실가로 과세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이에 따라 83년부터 부동산을 취득한 후 1년 이내에 양도하는 단기양도, 미등기 전매 등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세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기준시가 과세제도로 변경하게 됐다.”<세금에 대한 오해 그리고 진실>(국세청 펴냄) 1가구1주택 비과세 폐지론과 고가주택 그런데 2003년 당시 김진표 부총리는 왜 비판의 집중포화를 감수하면서까지 1가구1주택 비과세 폐지론을 들고 나왔을까. 사실 학계에선 오래전부터 1가구1주택 비과세 제도의 폐지를 주장해왔다 (<조세론>(이필유, 유경문 지음, 2003), <부동산 처분과세제도에 관한 연구>(박한범 지음, 1994) 등). 서민 주거생활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비과세하고 있으나 이를 악용해 양도차익을 노린 부동산 투기의 수법으로 활용될 뿐더러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형평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미국이나 일본처럼 일정액의 양도차익을 소득공제해줌으로써 실질적으로 양도소득세를 면세해주는 방안을 제시해왔다. 김진표 부총리도 당시에 대안으로 외국의 소득공제 제도를 언급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가 1가구1주택 비과세 폐지를 구체안까지 준비하지는 않았었다. 김수현 청와대 비서관은 “1가구 1주택에 대한 양도세 논란은 실제 세금을 걷는 세수가 목표가 아니라 투명화의 문제였다. 따라서 실익도 없이 80%가 넘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기보다 다른 방법으로 대처하고 이 부분은 건드리지 말자고 정리했다”고 밝혔다. ‘고가 주택’이라는 다른 문 ‘다른 방법’의 문은 이미 열려있었다. 국민의정부 말기인 2002년 가을, 10·11조치로 도입된 ‘고가주택’ 개념이다. 실거래가액 6억원이 넘는 주택을 고가주택으로 분류해 1가구1주택이더라도 양도세 감면 혜택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면적기준(전용 45평 이상)과 금액기준(거래가액 6억원 이상) 등 2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고급주택’으로 분류해 양도세를 매겨온 방식에서 진일보한 것이었다. 반발은 거셌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국민의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위헌 소지마저 있다”고 주장했고, 당시 대통령 후보이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정몽준 의원이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10월19일치 사설에서 ‘KDI(한국개발연구원)도 비판하는 부동산정책’이라는 제목으로 정부안을 비판했다.
2002년 재산소비세심의관으로 있을 때, 고급주택에 대해서는 1가구1주택이더라도 비과세 대상에서 제외시켰는데 가만 보니까 전용면적 45평 이상이면서 그리고 6억원 초과되는 주택이라는 두 가지 동시충족 조건에서 다 빠져나가고 있었다. 타워팰리스의 십억대 주택도 세금 한 푼 안내고 다 빠져나갔다. 이건 안 되겠다 싶어 면적기준을 없애려고 고급주택을 고가주택으로 바꾸겠다고 보고하니까 위에서 깜짝 놀라더라.” ■ 타워팰리스 양도세 면세의 앞뒤 외환위기 당시 양도세의 고삐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준 결과,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03년 하반기 들어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최고가 아파트’로 꼽히게 된 타워팰리스가 '전용면적 50평' 이하의 경우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수 억원대의 매매 차익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게 됐다. 이 조치로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1499가구) 분양과 2차 미분양 960가구의 소진 시기가 때마침 이에 해당돼 수 백가구가 혜택을 입게 된 것이다. 타워팰리스 1차는 1999년 6월 평당 1100만~1200만원에 분양했으나 문제가 불거져 나온 2003년 10월 당시 시세는 2000만~2200만원선이었다. 평당 1000만원 가까운 시세 차익을 보이고 있었다. 2003년 11월 한국일보는 “57평형의 경우 바로 팔면 시세차익만 4억원이 넘는데 1억원 가량의 양도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68평형의 경우도 1억5000만원가량의 양도세를 면제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가격 급등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게 된 이들이 양도세 면제라는 횡재까지 덤으로 얻게 된 것이다. 이 특례제도는 2007년 말 끝난다. 현재 1가구1주택 양도세 비과세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기존 주택을 3년 이상 보유해야 하고 서울 등에서는 기존 주택에 2년 이상 거주하는 조건도 만족시켜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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