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대학교를 마치고, 군복무를 위해 공군 학사장교로 입대했다. 선배의 권유로 신용카드를 만든 A씨는 처음 맛보는 신용거래에 재미를 붙이게 됐고, 급기야 카드 사용액이 월급을 초과하기에 이른다. 카드 결제금액에 고민하던 A씨는 은행에 방문해 상담을 받은 후 5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하게 된다.
처음에는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하면서 빨리 상환해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왠지 내돈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마이너스통장의 돈을 사용하게 됐다.
A씨가 전역할 즈음에는 500만원의 마이너스 한도를 거의 사용해 퇴직금을 받아 마이너스통장을 메우니 3년간의 군 생활 동안 돈 한푼 모을 수 없었다.
부끄럽게 고백하지만 A씨의 모습은 20대 후반의 필자의 모습이다.
그 후에 필자는 신용카드를 없애고 주로 현금이나 체크카드를 사용하고 있고, 마이너스통장도 없앤 지 오래다.
그 당시에는 돈 한푼 모으지 못하고 전역한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결혼한 후 늦바람이 들기 전에 젊은 시절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마이너스통장으로 마이너스 인생 살지 말라
현장에서 재무상담을 하다보면 주택담보대출과 마이너스통장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빚’에 대해 잘 알고 대처하는 가정보다 ‘나중에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가정을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이런 현상은 과소비에 익숙해진 20~30대의 가정에서 많은데, 얘기를 나누다보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서울대학교 최현자 교수와 함께 대학생들의 금융이해력지수를 측정한 적이 있다.
4년제 대학교 20개, 2년제 대학교 8개 등 전국 28개 대학에 재학 중인 2490명의 학생을 표본으로 선정해 소득, 자금관리, 저축과 투자, 지출과 신용의 이해 등 4개 영역으로 구성된 금융이해력과 일반적 특성을 조사했는데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60.8점에 불과했다.
특히 ‘의료보험’이나 ‘학자금 대출’과 같은 실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금융거래와 관련된 문항의 정답률이 낮아 금융교육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학생들이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사회에 진출하면서 경제활동인구의 1/3 정도가 저신용자로 힘들게 경제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2008년 말 기준으로 은행 전산망에 신용불량자로 등재돼 있는 사람은 약 250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신용회복위원회와 법원 등 중재기관을 통해 개인워크아웃, 개인회생, 파산 등 회생절차를 받은 사람들을 포함하면 신용위험에 빠진 사람의 수가 50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우리나라 경제인구를 2500만명으로 추정할 때, 약 2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신용 위험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남의 돈’을 무서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가정과 재무상담을 진행할 때 마이너스통장이 있는 경우 "이걸 왜 만들었냐"고 질문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만들었다가 조금씩 쓰게 됐고, 빚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서 어느 순간 내돈처럼 생각되더라"는 답변을 많이 듣는다.
이런 가정의 특징은 마이너스통장을 한도까지 사용해 주기적으로 대출 한도를 늘리고, 상여금을 받아 목돈으로 상환하더라도 습관적으로 다시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마이너스통장을 카드 결제 통장으로 연결해 쓰고 있는 가정이 많은데, 이 경우 불필요한 생활비가 급격히 늘고 현금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워 부채 규모가 단기간에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급전이 필요한 비상사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신용카드나 마이너스통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 준비해 놓은 긴급예비자금이 필요하다.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놓고 매월 이자가 빠져나가고 있는데, 저축할 엄두를 못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남의 돈’에 대한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 ‘가을 빚에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처럼 한번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놓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한도까지 사용하게 되고, 독한 맘을 먹지 않는 이상 절대 갚지 못하고 몇년째 그대로 방치해놓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빚에 대한 원칙 '7%-30%-30% 룰'을 지켜라
빚에 대한 원칙은 7%, 30%, 30%를 기준으로 잡는 것이 현명하다.
즉, 대출 금리가 7% 이하이고, 총자산 대비 부채 금액이 30% 이하이며, 월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이 30% 이하일 때에만 부채를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주택 담보대출을 제외한 모든 신용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원칙 때문이다.
경제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나머지 신용대출의 경우 합리적인 부채 상환계획을 세우면 2년 내에 전액 상환할 수 있다. 불필요한 신용대출이 없을 때 월 소득을 활용한 저축액을 늘리고, 자산 증식에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마이너스통장이 있는 가정이라면 2011년을 ‘부채로부터 독립’ 하는 한해로 만들어보길 바란다. 중독증을 치료하려면 약을 먹는 것보다 독을 빼내는 것이 우선이듯, 부채 중독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의 돈’은 내 가정의 자산을 증식시키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남의 돈’을 먼저 없애가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아서 월급날에 신용카드 결제액이 없고, 마이너스통장이 없어 이자 나갈 일이 없으며, 비상예비자금 통장에는 혹시 실직하더라도 6개월 이상을 버틸 수 있는 돈이 들어있다고 가정해보자. 기분이 어떤가? 이제는 이러한 즐거움을 느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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